대학생 청춘 놀이터~ *루키


군생활을 하면서 한 두 가지 아이디어가 나올 때마다 누가 빼앗아 갈까 숨기기 보다는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면서 의견을 구했다. 왜냐하면 아무리 기발하다고 생각되는 아이디어라고 해도 전문지식이 아닌 이상 내가 생각하는 순간 이미 최소 수 백 명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고 실행되지 않는다면 어차피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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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분대가 변경되어 같은 분대가 된 해진이에게 생각이 날 때마다 이것저것 이야기 했지만, 대부분의 아이디어들은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거나 개인이 하기에는 불가능한 사업들이 많았다. 해진이는 사업가인 부모님 영향으로 사업적으로 무개념 상태였던 나의 엉뚱한 생각들을 고맙게도(?) 조기에 잘 막아주었다. (…..그래도 그렇게 나온 아이디어 중에는 실제로 지금 사업화되어 투자 받고 진행되는 사업도 있다구!!)

 

여튼 이러한 생활을 하다 1월쯤에 내가 열심히 이용하던 스누라이프(서울대 대학생 커뮤니티)를 보고 대학생 커뮤니티의 가능성을 보게 되었고 그 동안 하도 이것저것 말하면서 욕을 먹어 왔던  터라 개인적으로 나름 생각을 정리해보니 정말 괜찮고 생각할수록 연결될 수 있는 것이 많다고 생각되었다. 이번에도 해진이에게 이야기를 해 보았더니 그 동안과는 다르게 끝까지 들어 보고는 괜찮을 것 같다며 같이 해보자고 하는 것이었다!(>_<) 날짜까지는 정확히 생각이 나지 않지만, 이때는 정말 별 생각 없이, 시작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무대뽀 심정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우여곡절 많은 길로 오게 되리라고는 그 때는 상상도 하지 못한, 그런 시절이었다.

 

이후에 남은 군생활을 하면서 해진이와 함께 3개월간 스프링노트에 정리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내가 먼저 5월에 제대했다. 그러나 제대도 했는데 학교 복학도 안 하면서 집에 손을 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던 중 야탑에 살고 있던 군대 선임의 소개로 야탑의 한 옥탑방에서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이전에 산 사람이 방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더럽게 써서 방 전체를 옥시크린으로 열심히 2~3일 동안 닦았던 에피소드가 기억이 난다. 전에 살았던 사람은 안 그래도 더워 죽겠는 옥탑방에서 컴퓨터 5-6대 놓고 냄새 나는 개랑 살았던지라 방에는 된장국 냄새가 온 방에 케진동(_) 했었다.(;;;) 그러나 방세가 싸서 결국 그 곳으로 이사를 결정했다.

 

당장엔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과외를 시작했는데 막 제대한지라 연고가 없어서 한여름에 버스를 타고 1시간씩 걸리는 곳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과외를 다녔다. 그리고는 뜨거운(?) 옥탑방으로 올라가서 찬물로 샤워를 하고 2만원 주고 산 조그만 선풍기 바람을 쐬며 기획을 했다. 요즘도 해진이가 그때 옥탑방 시절을 두고 자주 놀리곤 한다. 가구 하나 없는 널찍한 옥탑방에 한여름에 혼자 팬티만 입고 앉아 조그만 상 하나 펼쳐놓고 노트북으로 뭔가 하고 있는 꼴이 내가 생각해도 웃겼을 것 같다.

Posted by Do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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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생활 상병에서 병장이 될 때쯤, 상돈이는 별난 인터넷 서비스 아이디어를 가지고 나에게 조언을 구했다. 인터넷 서비스의 자도 모르는 나였지만,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께서 장사를 하셨기 때문에, 항상 사업에 관심이 많았고, 사업에 관련된 얘기들은 언제나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상돈이가 말하는 인터넷 사업들은 좀 심하게 터무니 없는 아이템도 있었고, 개인이 하기에는 말도 안 되는 아이템이었기 때문에,


넌 요즘에 잘나가는 서울대 조선과니까 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나중에 취직이나 잘해.”라고 조언을 해주었지만, 진짜 단단히 마음을 먹은 듯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상돈이가 흥미 있는 이야기를 하나 해주었다. 한국에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인터넷 서비스가 없고, 또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은 학업에 관련 된 정보를 공유하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이었다. 당장 복학해서 수강신청을 하려고 해도 강의평가수업에 대한 정보가 전무하기 때문에 말 그대로 찍어서수업을 정한다는 것이다.


 

나 또한 대학생이기 때문에 쉽게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내가 미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 우리 학교에서는 블랙보드라는 시스템을 이용했다. 그곳에서 학생들은 각 수업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자유롭게 토론하고 교수님, 조교까지 참여해서 수업 관련 이야기를 나누었다. 프로젝트 과제가 나오더라도 모르는 것은 애들끼리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조교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학생들을 도와줬던 블랙보드 시스템은 나의 학교 생활에서 큰 역할을 했었다. 또한 우리학교 커뮤니티에 있는 학생들의 강의평가는 내가 수강신청을 하기 전에 꼭 들르는 사이트이기도 했었고, 교수님 수업 제대로 하시라는 이야기를 비롯한 재미있는 학교 이야기들이 많았기 때문에 하루에 한번씩은 꼭 들르는 곳이기도 했다.


상돈이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대학생을 위한 인터넷 서비스라는 목표가 생기게 되었을 때, 나의 군생활은 다시 시작된 것 같았다. (물론 제대를 4개월 남긴 시점이긴 했지만;; ㅎㅎ) 그 동안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 지도 잊으며 그저 시간을 때우고 있었는데, 녀석과 함께 어떤 서비스를 만들 것인지 계획하는 것은 정말 멋진 시간이었다.


상돈이와 나는 24시간씩 교대 경비 근무를 했었는데, 병장이 되어서는 주로 PC업무를 맡았기 때문에 대학생들이 이용하는 모든 커뮤니티와 외국 사이트들을 보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스프링 노트에 우리의 생각을 계속해서 공유해 나갔다. 상돈이가 하루 종일 생각하고 분석한 내용을 정리해 놓으면 그 다음날 녀석이 자는 동안 아침에 내가 교대 근무를 한 후 읽어보고 나의 생각을 적는 24시간 풀 가동 방식으로 기획이 시작되었다. (지금 다시 보면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하기 민망한, 웃음만 나오는 참 어이없는 내용도 많다.;;)


또한 우리 부대에 있었던 60~70명의 카투사들은 거의 90%이상이 서울권 대학생들이었기 때문에, 서비스에 대한 설문조사도 어려움 없이 거의 매일 할 수 있었다. 내 생각에는 그들도 우리의 설문을 즐거워했었던 것(?)같다. (병장 말기였기 때문에 확실하진 않다.)


그렇게 3개월간 한 군대 기획을 들고 제대를 할 수 있었고, 이후에 우리는 상상도 못했던 파란만장하고 빈곤한 야생 벤처 생활이 시작되었다.

Posted by noljagoo


. 주상돈.

 

나이 스물 다섯. 서울대 조선해양학과 휴학 중. 전에는 축구 할 때 풀타임으로 뛰어도 멀쩡했는데, 벤처의 세계로 뛰어들면서 가끔 계단 내려갈 때 다리가 후덜거리는게(안보여라...-_-) 요즘 고민이라면 고민이다.

 

나는 2005년까지 학교를 다니며 별 생각 없이, 남들처럼 그렇게 흘러 가는 대로 살았다. 그러다 친구들 틈에 묻어 신청한 카투사에 친구들은 다 떨어졌는데 엉뚱하게 나만 붙어서 군입대를 하게 되었다. 입대할 때까지만 해도 진짜 2년간 갇혀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끔찍했는데(카투사가 편한 곳인지도 몰랐으니 양해 바람-_-) 논산에서 4주 훈련을 받고 행군을 하면서 향후 2년을 이렇게 하기 싫은 마음을 가지고 끌려 다니면서 시간만 보내면 정말 최악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카투사 신병 교육대에서 한국 내 주둔하고 있는 마지막 보병부대에 전투병으로 지원했다. 이때 처음으로 선택이라는 것을 경험 하게 되었다. 처음 배치 받자 마자 적응할 틈도 없이 말 못하는 신병으로 장대비 속에서 23일 훈련도 하고 산속에서 잠도 자고 며칠 동안 꼬질꼬질 씻지도 못하고 지내다 보니 가만히 있었으면 편한 보직 받았을 텐데 괜한 호기였나 싶었다. 하지만 부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들 선택에 의해서 지원을 해서 그랬는지 몰라도 생각 있고 배울 점 많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2년간의 군생활이 끝나고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아도 정말 잘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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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경, 훈련을 마치고

지금까지 Rukie 1년 가까이 진행하면서 정말 필요한 것은 돈이나 기술이 아니라 같이 믿고 의지하며 일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매일 느끼고 있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랑 일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한다. 군대라는 내 생에 첫 번째 선택을 통해서 평생에 몇 명 만나지 못할,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을 2명이나 만났고, 그 중 한 명이 루키의 공동 창업자인 해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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쵸큼 건방지게 큰 이해진-_-

 처음 1년 동안은 분대도 다르고 해진이가 병장들과 주로 어울려 다녀 별로 친해질 기회가 없었다. 나는 원래 축구를 매우 좋아하는데 부대 안에 잔디구장까지 있어서 시간만 나면 선임들과 미친 듯이 축구만 하기 바빴다. 그러다가 2007년 가을쯤부터 영어 공부한다는 핑계로 미국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고 이왕 하는 거 자막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당시 자막은 포털의 까페에서 모여 팀으로 활동하거나 디씨인사이드 갤러리에서 익명의 개인들이 만들어서 올리는 식이였는데 나는 팀에 합류하지 않고 익명으로 디씨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몇 번 하다 보니 인기 드라마인 경우에는 여러 사람이 따로 작업해서 여러 개의 중복된 자막이 나왔고 빠르게만 만들려고 하다 보니 완성도도 많이 떨어지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조금 개선을 해보고 싶어 자막 작업을 여러 명이 모여 구글 닥스에서 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해서 미드 자막팀을 꾸리는 것을 시도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한 사람이 하루 종일 걸리던 것을 잘게 쪼개서 여러 명이 동시에 진행하니 자막 작업이 1/n 은 아니지만 매우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자막제작은 아무 보상 없이 굉장히 노력이 많이 들어감에도 서로 연관성 없는 사람들이 모여 매우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이것을 보면서 나는 어느새 인터넷이 가진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다. 당시 웹 2.0 열풍이 불고 있었는데 자막을 만들기 위해 인터넷에서 모르는 사람들을 모아서 실제로 작업을 진행해보니, 2.0의 변화가 몸으로 와 닿았다. 사실 벤처 거품이 있었던 90년대 말부터 논의되던 가능성이지만, 그 당시에는 기술적으로, 문화적으로 실현 불가능해서 버블이라는 결과를 가져왔지만 현재는 그 가능성이 충분히 현실화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개인의 생각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의 생활 패턴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흥분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어떻게 웹 시장의 변화에 접근할 수 있을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 내 모습이 해진이가 보기에는 좀 특이해 보였던가 보다.

Posted by Do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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